창덕궁 궐내각사 1

창덕궁 궐내각사 1

김가연 /

2023-03-18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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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녕하세요? 저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우리 문화유산을 알려드리고 싶은 USCO 11기 청소년 해설사 김가연입니다. 여러분께 자연과 궁궐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창덕궁을 소개합니다. 1405년 태종 때 만들어진 창덕궁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광해군 때 재건되었습니다. 순종 때까지 사용하여 20세기 초까지 왕이 계셨던 곳입니다. 서울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궁궐 중 14만 평으로 가장 넓은 궁입니다. 6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창덕궁은 1997년 12월 6일 유네스코가 정한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습니다. 조선왕조의 관청은 궐 밖에도 있지만 왕을 잘 보좌하기 위해 궐 안에도 있었습니다. 궐내각사는 궁궐 내에 위치한 관청들로 궁궐 안에 들어와 활동하는 관원들이 일하는 곳이었습니다. 창덕궁의 궐내각사는 인정전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인정전 남쪽과 동쪽은 왕의 일상생활과 활동을 지원하는 실무 관서가 위치하였으나 일제강점기에 철거되어 복원되지 못했습니다. 인정전 서쪽 궐내각사는 가운데에 흐르는 금천을 경계로 규장각 관련 건물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께 금천 서편에 위치한 규장각 관련 건물들을 소개합니다. 먼저 규장각은 학문을 좋아한 22대 왕 정조 때 지은 왕실의 도서관으로 궐내각사에 한 개, 후원에 한 개를 만들었습니다. 후원에 있는 규장각은 왕실 가족들이 주로 사용하였고, 관리들이 다니기에는 불편하여 관리들을 위해 규장각(이문원)을 설치하였습니다. 왕의 직속기관으로 강력한 왕권 확립과 부흥을 도모했습니다.

  • 규장각 오른쪽에 위치한 검서청은 서적의 출판과 수집, 검토, 필사하는 검서관들이 근무하고 당직을 서는 곳이었습니다. 검서관은 5~9품에 해당하는 관직으로 당시 파격 인사로 선발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관직은 학식과 재능이 뛰어난 서얼 출신들을 등용하였으며, 정조 3년 초대 검서관으로 선임된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등이 있습니다. 정조는 검서청에서 매월 시험을 치러 상과 벌을 내렸습니다. 서얼 출신으로 나랏일의 기회를 얻은 이들은 충성심과 고마움이 높아 정조의 친위세력 확대에 이바지했습니다. 건물 양 끝칸은 누마루로 되어있으며 금천 쪽 누마루는 '동의루'라는 별도의 이름이 있고, 동의루는 금천 위에 세워진 긴 돌기둥 위에 있어 운치를 자랑합니다.

  • 책고는 규장각의 책을 보관하던 창고입니다. 봉모당 뒤인 금천변에 위치한 전각으로 일직선으로 길게 늘어진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전각이 아닌 여러 전각으로 되어 있으며 봉모당 뒤쪽과 측면에 각각 한 채, 봉모당 뒤편의 금천변에 한 채 총 3채가 있습니다. 책고는 맞배지붕집으로, 출입문과 교창 외에는 전부 붉은 나무판으로 벽을 세웠습니다. 벽 위에는 교창을 설치하고, 아래에는 구멍을 뚫어 환기가 될 수 있도록 했습니다.

  • 선원전은 역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조선시대 어진은 초상화 이상의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진은 국왕 자신과 왕실의 권위를 가시적으로 나타내는 상징물이었습니다. 선원전은 궁궐 안 왕실의 사당이며 태조 이하 영조, 정조 등 여러 왕의 어진이 있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창덕궁 후원 외진 곳에 옮겼습니다. 왕을 가까이에 보좌하기 위해 궁궐 내에 있는 궐내각사의 일부와 왕들의 초상화인 어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선원전을 알아보았습니다. 마지막 왕조의 숨결이 느껴지는 창덕궁에 대해 알아보는 첫 번째 해설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원전 사진 출처 : 문화재청 https://www.heritage.go.kr/heri/cul/imgHeritage.do?ccimId=6408115&ccbaKdcd=12&ccbaAsno=08170000&ccbaCtcd=11